1. 부천식물원

 

소개

부천시 원미구 춘의동에 총면적 27.127㎡ 지하 2층, 지상 2층 규모의 온갖 희귀한 식물들을 볼 수 있는 식물들의 낙원이다. 식물원은 부천시의 상징인 복사꽃 모양을 형상화하여 유리온실로 건축하였으며 재미있는 식물관, 수생 식물관, 아열대 식물관, 다육 식물관, 자생 식물관 등 5개의 테마식물관과 중앙정원에 총310종 9,975본이 식재되어 있다. 주위의 숲과 어우러져 시민들에게 살아 숨쉬는 자연학습의 장 및 인근 자연생태박물관, 어린이동물원과 함께 다양한 문화 휴식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위치

경기도 부천시 길주로 660

 

2. 관북리유적과 부소산성 [유네스코 세계유산]

 

소개

* 백제 문화의 보고, 부소산과 부소산성 *

부여에 들어서면 시가지 북쪽에 검푸른 숲을 이룬 해발 106m 의 나지막한 부소산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 온다. 부여의 진산인 부소산에는 수많은 백제 여인들이 꽃잎처럼 떨어져 죽음으로 절개를 지킨 낙화암, 백화정, 사자루, 반월루, 궁녀사, 고란사, 부소산성(사적 제5호), 해맞이하는 영일루, 성충ㆍ흥수ㆍ계백의 백제 충신을 모신 삼충사, 곡식 창고터였던 군창지, 백제 군인의 움집 수혈병영지 발길 닿는 곳마다 발걸음을 붙잡는 토성들, 백제의 역사와 백제왕실의 이야기가 곳곳에 배어 있다. 금강의 남안에 있는 부소산의 산정을 중심으로 테뫼식 산성이 동서로 나뉘어 붙어 있고, 다시 그 주위에 북동쪽의 계곡을 둘러쌓은 포곡식(包谷式)산성을 동반한 복합식 산성으로, 성내에는 사자루, 영일루(迎日樓), 반월루(半月樓), 고란사(皐蘭寺),낙화암(落花巖),사방의 문지(門址), 군창지(軍倉址) 등이 있다.『삼국사기(三國史記)』 백제본기(百濟本紀)에는 사비성, 소부리성(所扶里城)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산성이 위치한 산의 이름을 따서 부소산성으로 불리고 있다. 이 산성은 백제의 수도인 사비 도성의 일환이며, 왕궁을 수호하기 위하여 538년(성왕 16)수도의 천도를 전후한 시기에 축조된 것으로 보이나, 이 보다 먼저 500년(동성왕22)경 이미 산성이 축조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후 천도할 시기를 전후하여 개축되었고, 605년(무왕 6)경에 대대적인 개수축이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한편 일부의 성벽은 통일신라시기에 수축되고 고려와 조선 시대에는 고을의 규모에 맞도록 축소되어 이용된 것으로 여겨진다.

[백제 문화를 만난다, 부소산의 유적지]

* 삼충사
부소산성 정문인 사비문을 지나 조금 걸어올라가면 삼충사가 있다. 외삼문과 내삼문을 지나 사당에 들어서면 백제말 삼충신인 성충, 흥수,계백의 영정과 위패가 모셔져 있다. 해마다 10월 백제문화제때 제향을 올리고 세분의 숭고한 구국충절을 기린다.

* 영일루
영일루는 부소산성의 맨 동쪽 산봉우리에 세워져 백제왕과 귀족들이 멀리 계룡산의 연천봉에서 떠오르는 해를 맞이하며 국정을 계획하고,나라의 태평과 백성들의 평안을 기원했던 영일대에 세운 누각이다.

* 군창지
일명 만리창(萬里倉)이라 불렀던 이곳은 1915년 불에 탄 쌀이 발견된 군대 곡식을 보관했던 창고이다.

* 수혈병영지
군창지를 조금 지나면 움집이 보인다. 움집은 백제 때 군인들의 움막을 발굴,복원한 것으로 1m 가량 움을 파고, 사방을 나무나 짚으로 벽을 두른 뒤 초가지붕을 얹은 모습이다. 원래 움집터와 저장고를 발굴한 곳에 전시실을 지어 구조를 자세히 살필수 있게 하였다.

* 사자루
부소산 가장 높은 곳(해발 106m)에 위치한 사자루는 동쪽 영일루와 더불어 일월 음양을 뜻하며 달이 밝은 밤 누각에 오르면 아름다운 경치가 눈앞에 펼져지고 시흥이 절로 일어난다. 사자루 건립 당시 터를 파다가 광배 뒷면에 명문이 새겨진(정지원명) 금동석가여래입상(보물 제196호)이 발견되었다. 사자루 현판 글씨는 의친왕 이강의 친필이고,뒤쪽에 붙은 白馬長江은 서예가 해강 김규진의 작품이다.

* 백화정
낙화암 절벽위에 세워진 육각지붕의 정자가 백화정이다. 백마강을 시원하게 내려다 볼 수 있는 백화정은 백제멸망 당시 꽃잎처럼 떨어져 죽음으로 절개를 지킨 숭고한 백제 여인들의 원혼을 추모하기 위해 1929년에 부풍시사(扶風詩社)라는 시모임에서 세웠다.

* 궁녀사
반월루 광장에서 동북쪽 태자골로 조금 내려가면 궁녀사가 나온다. 이 궁녀사는 백제 의자왕 20년(660)에 나당 연합군에 의해 사비성이 함락되던 날,낙화암에서 꽃잎처럼 떨어져 죽은 백제 여인들의 충절을 추모하고 그 뜻을 후세에 널리 기리고자,1965년에 세웠다. 10월 백제문화제 때 제향을 올리고 있다.

* 부여관북리백제유적
부여군 부여읍 관북리 725번지에 위치한 이 유적은 현재 왕궁지로 알려져 있으며, 국립부여 문화재연구소 남쪽일대 184필지 95,048㎡(28,780평) 중 33필지 2,102㎡는 1983년 9월 충청남도 기념물 제43호 전백제왕궁지(傳百濟王宮址)로 지정되어 있다. 1982년부터 이 일대를 중심으로 충남대학교 박물관에서 5차에 걸쳐 발굴조사하여 1983년도에는 방형석축연지(方形石築蓮池)가 발견되었고, 1988년 발굴조사에서는 토기 구연부에 북사(北舍)라는 명문이 발견되었으며, 1992년 조사에서는 현재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의 남쪽 50m 지점에서 백제시대의 도로유적과 배수시설이 드러났다. 삼국시대의 궁궐 중 고구려의 안학궁을 제외하면 아직까지 신라와 백제의 왕궁은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지만, 백제시대 마지막 도읍이었던 사비도성의 일부 유적이 밝혀진 것은 매우 중요한 학술적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위치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부소로 15

 

3. 채석강

 

소개

채석강은 썰물 때 드러나는 변산반도 서쪽 끝 격포항과 그 오른쪽 닭이봉(200m)일대의 층암절벽과 바다를 총칭하는 이름이다. 기암괴석들과 수천 수 만권의 책을 차곡차곡 포개 놓은 듯한 퇴적암층 단애로,  중국의 채석강(彩石江)과 그 모습이 흡사해 채석강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특히 닭이봉 한 자락이 오랜 세월동안 파도에 깎이면서 형성된 퇴적암층이 절경이다. 채석강의 지질은 선캠브리아대 화강암, 편마암이 기저층을 이루고 있으며, 중생대 백악기(약 8천 7백만 년 전)에 퇴적한 퇴적암의 성층으로 바닷물의 침식에 의해 마치 수만 권의 책을 쌓아 올린 듯한 와층을 이루고 있어 자연의 신비감을 느끼게 한다. 부안채석범주(채석강.적벽강) 일원은 변산반도에서 서해바다 쪽으로 가장 많이 돌출된 지역으로 강한 파랑의 영향으로 형성된 곳이다. 높은 해식애 및 넓은 파식대, 수 만권의 책을 정연히 올려놓은 듯한 층리 등 해안지형의 자연미가 뛰어날 뿐만 아니라 파식대, 해식애, 해안단구 및 화산암류, 습곡 등은 과거 화산활동 연구의 기초자료로서 지구과학적 가치가 높아 서해안권국가지질공원 명소로 지정된 곳이기도 하다. 또한, 부안채석범주일원은 산림경관과 서해안 해안절경의 멋스러움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곳이며 수성당과 같은 민속적 요소와  봉화봉의 봉수대와 같은 역사적 요소가 가치를 더욱 높여주고 있다.  또한 다양한 암벽 및 상록활엽수의 식생이 형성되어 있고 천연기념물 제123호 후박나무군락이 있는 등 식생환경이 우수한 곳이다.  바다생물과 해식동굴의 신비로운 모습을 간직한 채석강은 하루 두 차례 물이 빠지면 들어갈 수 있는데, 간조 때는 물 빠진 퇴적암층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바다생물과 해식동굴의 신비로운 모습을 볼 수 있다. 특히 간조 때 해식동굴에서 바라보는 낙조와 노을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답다.

위치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면

 

4. 진주성

 

소개

※ 19_20 한국관광 100선 ※

진주와 관련된 역사적 사건은 많다. 임진왜란 3대첩의 하나인 진주대첩 임란 때의 논개의 순국,1862년 전국적인 농민항쟁의 시발점이 된 진주농민항쟁 등 큰 사건만 해도 부지기수이다. 진주성은 삼국시대 거열성(居列城), 고려시대 촉석성 (矗石城)으로 불렀던 것으로 조선시대에 이르러 진주성으로 개칭되었다. 석축 된 성의 둘레가 약 1,760m(4,359척), 높이는 약 5~8m(15척)이며, 성 안에 우물과 샘이 각각 3개 있고, 군창(軍倉)이 있었다고 한다. 이보다 앞선 동국여지승람에 실린 하륜(河崙)(1347~1416년)의 성문기(城門記)에 보면 성이 옛터만 남아 언제 쌓은 것인지 알 수 없는데, 왜구의 침입이 빈번하여 고려 우왕 5년(1379년)에 진주목사 김중광에게 석축하게 하였다고 한다. 이 때 성의 둘레는 800보이고, 성의 높이는 세길을 넘으며 의정문(서쪽), 지제문(북쪽), 예화문 (남쪽)이 있고, 성 밖은 서쪽으로 청천(靑川)이 남쪽에는 긴강(남강)이 흘렀으며, 북쪽에는 못이 있는데 성과 못 사이에는 참호를 팠다고 했다.

이처럼 고려 말에 왜구방어의 보루로 고쳐 쌓은 이 성은 조선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호남으로 진출하려는 왜적을 막는 관문이 되었다. 임진왜란 3대첩의 하나로 제1차 진주성싸움을 드는 것은 3,800여명의 군사로 10배에 가까운 왜적을 물리쳤을 뿐 아니라, 이 성을 지킴으로써 곡창지대인 호남을 지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1593년 제2차 진주성싸움에는 민.관.군 7만여명이 왜군 10만여명을 맞아 11일간의 치열한 전투 끝에 모두 순의하였고, 이 때 논개가 적장을 안고 남강에 투신하여 충절을 다한 곳이기도 하다. 성내는 촉석루, 김시민 전성각적비, 의기사, 서장대, 북장대, 창열사, 국립진주박물관, 호국사, 야외공연장 등이 있다.

* 의기사(義妓祠)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7호 의기사는 임진왜란 당시(1593년) 왜장을 껴안고 남강에 투신한 논개의 영정과 신위를 모신 사당이다. 논개는 진주성이 함락되자 성민과 나라의 원한을 갚기 위하여 왜장을 촉석루 아래 의암으로 유인한 후 함께 남강에 몸을 던져 순국하였다. 의기사는 그 의로운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영조 16년(1740년)에 경상우 병사 남덕하(1688~1744년)가 창건한 이래 두 차례에 걸쳐 중수하였으며, 지금의 건물은 1956년 의기창열회가 시민의 성금을 모아 중건한 것이다.

위치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626

 

5. 부산수제맥주페스티벌 2019

 

소개

2019년 6월 12일부터 16일까지 부산 벡스코 야외광장에서 '2019 부산수제맥주페스티벌'이 개최된다.

2019 부산수제맥주페스티벌에서는 150여개의 국·내외 수제맥주와 맛있는 음식들을 맛볼 수 있다. 유명 아티스트들이 펼치는 재즈, 팝, 가요, 댄스, 마술쇼 등을 함께 즐길 수 있는 귀와 눈과 입이 즐거운 축제이다. 행사장 입구에서는 여러 수공예품들을 만나보는 플리마켓도 함께 열린다.

위치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APEC로 55

 

6. 주문진항

 

소개

주문진항은 주로 화물선이 주로 입출항하고 있으며 동해안의 주요어항기지, 약 350여척의 어선이 드나들며 난류와 한류가 만나는 동해의 특성상 오징어, 양미리, 명태, 청어, 멸치 등이 많이 잡힌다. 배에서 갓 내려놓은 횟감이 무척 싱싱하며 관광객의 구미를 당기기에 충분하다. 저렴한 가격으로 많은 회를 즐길 수 있다.

위치

강원도 강릉시 주문진읍 해안로

 

7. 헤이리 예술마을

 

소개

헤이리 예술마을은 문화와 예술의 창작, 전시, 공연, 축제, 교육이 모두 한 곳에서 이루어지는 종합적인 예술문화 마을이다.1997년 파주출판도시와 연계한 '책마을'을 구상하는 과정에서 다른 분야의 문화 예술인들이 참여하면서 '문화예술마을'로 개념이 확장되었다. 가수 윤도현, 소설가 박범신, 방송인 황인용, 영화감독 강제규, 강우석 등 문화 예술계의 저명한 인사들을 포함하여 다양한 예술분야에 걸쳐 총 370여 회원들이 있다. '헤이리'라는 독특한 이름은 파주 지역에서 농사지을 때 부르던 전통 농요인 ‘헤이리 소리’에서 따온 것으로 순수한 우리말이다. 헤이리 마을에 가면 우선 8번과 9번 출입구 중간의 마을 주변 도로변에 위치한 커뮤니티하우스(사무실)에서 안내 정보를 얻은 후에 본격적으로 둘러보는 것이 좋다. 종합예술마을이라 규모가 너무 커서 걸어서 돌아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각종 미술작품들이 자연의 생생한 숨결과 어울려 그대로 또 하나의 거대한 예술품이 되는 헤이리 예술마을은 새로운 분위기를 찾는 가족 나들이 코스로 손색이 없다. 건축가들은 페인트를 쓰지 않고 지상 3층 높이 이상은 짓지 않는다는 기본원칙에 따라 자연과 어울리는 건물들을 설계했다. 그래서 헤이리 여행은 건축물을 감상하는 데서 시작된다.

안과 밖이 구분되지 않는 건물, 지형을 그대로 살려 비스듬히 세워진 건물, 사각형의 건물이 아닌 비정형의 건물 등 각양각색의 건축물들이 개성을 뽐내며 서있다. 헤이리의 길은 반듯하지 않고, 자연이 만든 굴곡을 그대로 따라가며, 아스팔트도 깔지 않았다. 헤이리 마을을 돌아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이 길을 따라 어슬렁거리며 산책하는 것이다. 산책을 하다 재미있는 건축물을 만나면 카메라에 담고 그러다 마주치는 미술관에 들어가 작품을 감상하면 된다. 헤이리 모든 건축물의 60%는 창작과 문화 향유 장소로 일반인들에게 개방되고 있다. 이것은 헤이리 마을의 규정이며, 이 규정의 최대 수혜자는 관람객들이다. 관람객들이 헤이리 마을을 돌아보고 있는 순간에도 헤이리에서는 창작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 헤이리 마을에서는 계절에 따라 국내외 유명 문화예술단체가 참여 또는 초청되는 여러 가지 문화예술 행사가 열린다. 그래서 헤이리 마을은 다정한 사람과 함께 돌아보는 곳임과 동시에 문화예술의 창달을 위해 노력하는 마을로도 알려지고 있다. 또한, 가는 길에는 오두산 통일전망대, 고려역사관, 한강과 임진강의 합류점 등을 볼 수 있고, 헤이리 마을 동쪽으로 길 건너편에는 경기도 파주 영어마을의 건물들이 동화 속의 건물처럼 눈에 들어온다.

위치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헤이리마을길 8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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